1. 정치적 배경 요약
- 튜더왕조 때 왕권이 강화된 가운데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의 활약으로 16세기 영국 문학은 황금기를 맞게 되었으나, 본인의 블로그에서 앞서 언급된 제임스 1세부터 왕정복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17세기의 사회적인 상황은 정치, 사회, 종교적 분열과 갈등의 시기라 정리할 수 있으며, 왕당파와 의회파, 국교도파와 청교도라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청교도 혁명이 성공했을 때에는 의회파 내의 청교도파가 우위를 차지하면서 의회의 권한이 강화되었으나 이후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면서 의회파 내에서 청교도파의 세력이 약해지고 궁극적으로는 국교파가 세력을 장악하게 된다.
2. 17세기 영문학의 특징
1) 16세기 문학과의 차이
- 이 시기의 영문학은 16세기 문학과 명백한 차이를 드러낸다. 과거 왕실의 후원을 받았었던 극의 장르는 쇠퇴하였으며 여러 차례의 정치적인 위기와 불안함 속에 발생한 혁명으로 인하여 운문체보다는 직설적이며 분명한 산문체의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 시기 영문학의 중심적인 시단은 크게 ‘형이상학파’와 ‘궁정파’ 혹은 ‘왕당파’로 나누어진다.
2) 형이상학파(Metaphysical School)
- 존 던(John Donne)을 비롯하여 조지 허버트, 앤드류 마블 등이 형이상학파에 속하는 시인들이다. ‘형이상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비평가는 존 드라이든(John Dryden)과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이며, 존 드라이든은 자신의 작품 『풍자론』(Discourse of Satire)에서 형이상학파에서의 중심인물인 존 던을 풍자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사무엘 존슨 역시 『가장 뛰어난 영국 시인들의 삶』(Lives of the Most Eminent English Poets)이라는 작품에서 『코울리의 생애』(Life of Cowley) 부분에 17세기 초기를 언급하면서, ‘형이상학적 시인’이라는 용어를 등장시키며, 이들이 지나치게 지식을 뽐내는 현학성등을 포함한 당대의 전통과는 동떨어져있는 기묘하면서도 이상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을 풍자하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형이상학적 시인’이라는 용어가 이 시인들의 명칭이 되어 버렸다.
- 존 드라이든, 사무엘 존슨, 이 두 비평가의 지적처럼, 형이상학파 시인들은 이루지 못한 사랑의 괴로움이나 슬픔, 그리고 이상적인 여인에 대해서,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아름다운 말로 듣기 좋게 꾸민 글로 숭배를 노래하는 그 시대의 연애 시에 대한 전통에 반대하여 이러한 시와는 전혀 조화를 이룰 것 같지 않은 천문학, 철학, 지리학, 법학, 의학, 기하학 등과 같이 다양한 지식 분야에 대한 개념과 용어를 시에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 형이상학파 시인들은 대화체 중심의 일상 언어를, 달콤한 언어나 운율 대신에 사용하여 서로 어울리지 아니하여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음이나 불규칙적인 운율을 활용하였고,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하여, 육체적 사랑을 거부하는 연인에게 묘사적 기법, 역설, 과장법,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실제와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 언어들을 활용했다.
- 이들은 또한 힘이 넘치는 거친 리듬을, 과거에 관행적으로 사용하였던 리듬 대신에 사용하였고 극적인 독백은 논쟁적이면서도 극적인 어조를 사용하였다.
- 형이상학파 시인들은 ‘형이상학적 기상’(Metaphysical conceit)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전혀 동떨어진 이미지들을 절묘하게 결합해내게 된다. 작품 『수줍은 여인에게』(To My Coy Mistress)에서 앤드류 마블은 순간적이고 격정적인 동물적인 사랑과는 반대로 천천히 성장하는 광대한 사랑에 대한 비유로 사용한 ‘식물적 사랑’(vegetable lov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형이상학적 기상의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 이 시인들은 당시에는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20세기에 이르러, 현대 시를 대표하는 T.S.엘리엇(Eliot)에 의해서 재발견되며 17세기를 대표하는 시단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히게 된다. T.S.엘리엇은 존 던의 시에 대해, ‘사상을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이해하며, 사상을 감정으로 녹여내는’ 통합적인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극찬을 한 바가 있다.
3) 궁정파 혹은 왕당파(Cavalier School)
- 형이상학파와 대조를 이루는 당대의 주류 시단은 궁정파 시인 혹은 왕당파 시인들을 말하며, 이 시단을 왕당파라 부르는 이유로는 청교도 혁명기에 찰스 1세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벤 존슨(Ben Johnson)과 그를 따르는 로버트 해릭(Robert Herrick)등이 주축이 된 시인 집단으로 영문학 최초의 문단을 형성한 작가들이었다.
- 드라마에서 장소와 시간 행동의 일치를 중시하는 고전주의 원칙을 고수하고자 하였던, 궁정파의 중심인물인 벤 존슨은, 시에서는 명백하고 확실한 것과 단순성을 바탕으로 균형미를 중시하면서 동시에 세련미를 주려고 노력하였으며,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 이 순간을 즐겨라 라는 뜻의 라틴어)은 왕당파 시인이 중심적으로 다룬 주제 이었다.
- 『실낙원』(Paradise Lost)를 쓴 청교도파 시인 존 밀턴(John Milton)은 이 시기의 또 다른 중요한 작가이다. 크롬웰을 열렬히 지지했던 작가는 청교도 혁명기에 혁명의 대의를 대중에게 알리는 팜플렛을 작성하는 일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혁명이 실패하였을 때는 ‘기독교적 인본주의’를 구현하고자 문학을 통해 르네상스 인본주의 정신과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결합하게 된다.
- 한편으로 드라마 장르는 청교도 혁명기에는 극장 폐쇄로 인하여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16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던 소네트 형식도 쇠퇴하였으나 존 던의 종교시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가 정치적인 격변기였던 만큼, 풍자문학이 유행하여 자리매김을 확고히 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18세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4) 17세기 산문의 특징
- 산문은 점차 다양해지고 각자의 스타일들을 찾아가는 경향이 있었으며, 전반적으로는 이전에 비하여 덜 장식적이고 격식도 덜 차리는 경향을 띠게 된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sis Bacon)짧고 명쾌하고 간결한 경구적 문장이나 로버트 버튼(Robert Burton)의 까다롭지 않고 쉬운 양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팜플렛에서 주로 사용되어진, 쉬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양식이 유행했던 이유는 여러 차례 혁명이 일어났던 격변의 시대에 자신들의 큰 뜻을 대중들에게 보다 쉽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또한 과학이 발달하고 진보됨에 따라 단순하고 명확한 문장들이 장식적이고 모호한 글보다는 오히려 더 선호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산문 문학으로는 베이컨의 『수필집』(Essays)와 존 로크(John Locke)의 『인간의 이해에 대한 수필』(Essays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을 들 수 있다.
'영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7세기 작가 – 벤 존슨(Ben Johnson, 1562~1637 > (14) | 2023.06.21 |
---|---|
< 17세기 작가 – 존 던(John Donne, 1572~1631) > (25) | 2023.06.19 |
< 크롬웰과 왕정복고 > (8) | 2023.06.18 |
<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 > (10) | 2023.06.17 |
<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 그리고 그의 말년 4> (13) | 2023.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