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니엘 디포(Daniel Defoe, 1660~1731)
- 18세기 영문학 작가 중의 한 사람인 다니엘 디포는 우리에게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1719)로 알려진 영국 소설을 집필한 영문학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 런던의 어느 식육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난 다니엘 디포는 동시대의 영문학 작품을 저술한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가 그랬던 것처럼 비국교도였고 교육적인 환경에서도 당시의 문학 작가들과는 다른 배경으로 학업을 마치게 된 다니엘 디포는 이후에 모직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비롯해 양말, 와인 등을 판매하는 장사를 시작하면서 작가이기보다는 사업가로서 삶을 시작한다.
2. 몬머스 반란(Monmouth Rebellion)
- 이 반란은 본인의 블로그 포스팅 중에서 ‘신고전주의와 명예혁명’ 부분에서 언급된 바가 있었는데, 제임스 2세가 형인 찰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는 과정에서 가톨릭교도였던 제임스 2세를 문제 삼아 그를 퇴진시키고자 찰스 2세의 혼외자인 제 1대 몬머스 공작 제임스 스콧 (James Scott, 1st Duke of Monmouth, 1649 ~1685)이 일으킨 반란이다. 반란을 일으킨 시점(1685년)에서는 영국의 남서부 지역에서 열렬한 지지를 얻었고 그에 힘입어 런던을 장악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3. 몬머스 반란(Monmouth Rebellion)과 다니엘 디포(Daniel Defoe)
- 이 몬머스 반란(Monmouth Rebellion)에 다니엘 디포가 가담을 하게 되지만 운 좋게도 죄를 용서받아 처벌은 면하게 되었으며 명예혁명이 일어나 왕의 자리에 오른 윌리엄 3세의 측근이자 비밀 요원이 되었고 이때부터 사업가가 아닌 작가로서의 토대를 다지는 계기를 얻게 된다. 즉 비밀 요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정치적인 문건을 작성하거나 집필 , 그리고 정기적인 간행물을 편집하기도 하였으며, 소책자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비평을 하는 등 언론에 관련되어진 활동을 하게 된다.
- 1702년에 『비국교도 대책 첩경』(The Shortest Way with the Dissenters)을 발표하게 된다. 영국이 비국교도들에 대한 압박과 탄압이 심화하였을 때 반어법적인 표현을 써서 영국의 국교회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시사적인 문제를 다룬 이 소책자로 인해 그는 옥살이를 하게 되지만, 이를 통하여 언론인으로서 그의 명예는 높아지게 된다.
4. 언론인 다니엘 디포(Daniel Defoe)
- 투옥된 상황에서도 다니엘 디포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하게 되었으며, 출옥을 하고 난 뒤에는 ‘토리당’의 옥스퍼드 백작의 비서로 일하며 주간지 『리뷰』(Review)를 1704년에서 1713년까지 간행하여 저널리스트이자 정치가로서의 활동을 하게 된다.
- ‘토리당’에서 ‘토리’는 아일랜드에서 본래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사람을 해치고 재물을 빼앗는 도둑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된 단어로, 당시 영국 왕실의 제임스 2세를 반대하는 의원들을 지칭하였다. 토리당은 영국 국교회는 옹호하면서, 비국교도를 배척하는 취지를 지녔으며, 이들은 왕권을 지지하는 지주나 귀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정치적인 기본 정책이나 정치적인 계획을 가진 정당으로서의 활동을 한 것이 아니기에 이들은 정치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 비국교도들에 대한 영국의 탄압을 반어적으로 비판하는 집필로 인하여 투옥까지 되었던 다니엘 디포가 이렇게 국교회 중심이자 비국교도 탄압을 중점적으로 하였던 정치인의 비서로 직무를 수행하면서 주간지를 발행하며 그들과 같은 정치적인 노선을 따라갔다는 점도 아이러니하지만, 몇몇 비평가들은 그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근본적인 자유주의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5. 정기 간행물 『The Review』(1704~1713)
- 그는 10년 동안 간행물 『The Review』를 주 3회로 혼자서 정기적인 간행을 하여 이 간행지에 교회, 무역, 정치에 관하여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체계적이면서도 온화한 설득이 담긴 논설문의 형태의 글을 게재하게 된다. 당시 언론인들의 글에 비해 상당히 독창적이면서도 재치 있고 경쾌한 형식을 글을 게재하였던 다니엘 디포의 인기와 명성은 날로 치솟게 된다.
- 영국 사회가 공화정에서 왕정복고의 시대로, 다시 의회 중심의 입헌군주 국가로 변모하는 사이, 사회의 구성원들도 중산계급의 시민들이 중심적인 사회 계층으로 성장하게 되는 등 지각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는 내용도 지난 포스팅에 기록한 바가 있는 것처럼, 다니엘 디포가 중산층에서 사업을 하던 경험은 이를 바탕으로 다져진 무역과 종교, 그리고 정치에 관한 내용으로까지 확장이 되어 이는 새로운 계층이 쉽게 이해하고 쉽게 와 닿을 수 있는 필체로 전달되었기에 가능한 일이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6. 소설가 다니엘 디포(Daniel Defoe)
- 언론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으면서 다니엘 디포는 중산층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다루면서 18세기 영문학에서 근대 소설의 선봉자로서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 영문학에서 근대 소설의 이전에는 귀족 중심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면, 다니엘 디포는 독자들의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하게 되어 중산층의 사랑을 받는다. 특히 59세의 나이인 1719년에 디포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소설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1719)를 발표를 하게 되며, 이 작품으로 세계 문학사에는 그의 이름이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표류하여 홀로 자신만의 힘으로 생존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근대적인 개개인이 그 주체를 확고히 해나가고 동시에 개인주의를 쟁점으로 하였으며, 당시 영국이 두둔하였던 해외의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었던 점, 그리고 서구중심주의를 강조했던 사회적인 사실 등이 여러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을 통해 소설에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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