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서의 배경
-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 1340~1400)는 '영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질 뿐만 아니라, 근대영어의 모태가 되는 중세 시대 영어가 정착을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형적인 중세인의 삶을 살았던 그는, 부유한 주류 상인이자 당시 에드워드 3세 치하의 궁정에서 궁정 내의 주류를 취급하는 관리직을 맡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페인과 프랑스 등지에서 수입되는 거대한 주류 유통을 통하여 이국적인 풍물을 접하였으며 라틴어와 프랑스어와 같은, 당시에는 고급이라 불릴 수 있는 교육을 받으며 시민계급의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2. 초서의 궁정 생활
- 중세 시대 영어에 커다란 업적과 명성을 남겼으나 문헌상의 기록은 많지는 않아 안타깝다고 할 수 있는데, 1357년에 그에 관한 기록이 최초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십 대였던 초서는 얼스터 백작 부인(Countess of Ulster)의 시종으로 귀족사회와 궁정에 인연을 맺게 되어 이 때 그는 단순한 봉사를 하는 것 이외에 당시의 궁정어인 불어를 배우게 될 기회를 가지며 나중에 성공적인 관직생활을 시작하는 데 발판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는 단순한 사회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의 행정 기구인 궁정에서 여러 가지의 직책과 업무를 맡게 되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3. 초서의 작품 활동
- 1368년에 그의 인생에서 작가로서 초기에 대작이라 할 수 있는 『공작부인의 서』(The Book of Duchess)를 대중 앞에 선보이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가 왕의 시골 유지라는 직책을 맡으며 쓴 책으로, 젊은 나이에 흑사병으로 사망하였고, 사망한 공작부인은 자신의 아내와는 자매 사이 이자, 동시에 당시 영국의 최고 실력가인 존 오브 곤트(John of Gaunt) 경의 아내를 애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 또한 그는 1370년 이후에는 국왕의 외교 특사로 공무를 집행하기 위하여 유럽을 다니며 이때 그가 영향을 받았던 프랑스 문학으로 인해, 『장미의 로망스』(Le Roman de la Rose)라는 그가 즐겨 읽었었는데, 그는 이 책을 번역까지 하게 된다. 그 이후 외교 특사로 이탈리아를 다니며 그의 삶과 문학은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된다. 즉 그 시기는 르네상스가 완전히 무르익은 시기로, 당시 이탈리아에서 영향력이 있는 작가인 단테와 보카치오의 영향을 받으며 이 시기에 『새들의 의회』(The Parlement of Foules),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더』(Troylus and Crideyde), 『철학의 위로』(De Consolation Philosophiae)와 같은 작품들을 완성하였다.
4. 초서의 말년
- 1385년에는 켄트(Kent)로 이주하여 치안판사로 임명되어 1386년에는 켄트의 대표가 되어 의회로 진출하는 등 바쁘면서도 부유한 시기를 보냈으나 궁정의 권력이 이동하는 탓에 관직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나는 일을 겪기도 하였던 그는, 1378년 아내의 사망으로 인하여 그의 타고난 업이었던 시를 쓰는 일에 전념을 하게 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학이 공존하던 시기이자 ‘English Peroid’라 불리는 독특한 영국 문학이 싹트던 이 시기부터 초서는 사망할 때까지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를 집필하게 되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끝을 맺지 못하고 미완성의 작품으로 남아 있게 된다.
5. 초서가 남긴 문학 작품의 배경과 성격
- 초서의 작품은 자신의 환경에 의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던 점과 이외에도 부모님의 영향으로 궁정 생활을 비교적 빠른 시기에 접하면서 우아하고 기품이 있는 양상이 작품 활동에 반영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당연히 해 볼 수 있을 법하지만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그는 이러한 것들을 직접적으로 자신의 문학 작품에 묘사하기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시민들의 생활이나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었으며 이를 조화롭게 작품에 묘사해내고 있다. 어찌 보면 이 때문에 초서의 문학 작품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시공간을 넘어 독자들이 가까이 갈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리될 것이라 여겨진다.
- 초서가 살아온 중세 시대는 영국인의 1/3을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였다. 우아하고 화려한 궁정의 모습과 대비되는 형국으로, 전 영토, 시민들을 황폐화와 사망으로 휩쓴 이 질병은 1348년, 1369년부터 1380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하층 계급의 생활은 말도 못 하게 힘들었다. 여기에 농민 반란이 일어나기까지 하였고, 대외적으로는 백년 전쟁(1337~1453)을 겪게 된다.
- 무려 100년을 넘게 지속된 이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볼 때 이 전쟁의 원인은 4가지로 요약을 해 볼 수 있으나, 프랑스의 왕위를 계승하는 문제와 플라망(Vlaams Gewest) 지역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문제가 백년전쟁의 핵심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현재는 벨기에 지방인 플라망(Vlaams Gewest) 지역은 필리프 4세 이후 프랑스가 이 지역에 세력을 갖고 있었고 당시 북부 유럽 상권의 중심지였으나 영국도 이 지역과 경제적으로 밀접하였던지라 두 나라의 대립과 긴장 상태는 지속적으로 존재하였으나 영국군이 먼저 침입을 하게 되어 전쟁이 시작되며, 프랑스는 잔다르크의 활약으로 초반에 우세하였던 영국에게서 빼앗긴 프랑스 영토를 회복하면서 중앙집권 국가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 이렇게 긴 전쟁과 흑사병, 농민 반란 등 나라의 안팎으로 불안이 가중되었던 이 시기에, 초서는 이 불안과 혼돈의 상황을 작품에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풍자하며 웃음을 만들어 내었다. 이는 초서가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지는 않았겠냐는 생각을 해본다.
출처 : <캔터베리 이야기 - 이동일, 이동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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